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0.26 사건 (문단 편집) === 밤하늘을 가른 총격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jeestar_402.jpg|width=100%]]}}}|| ||<:>{{{#fff [[김계원|{{{#fff 김계원}}}]]이 그린 사건 발발 당시의 약도}}}|| 저녁 7시 38분, 박선호에게 준비가 다 되었음을 확인한 김재규는 다시 연회장으로 들어왔다. 신재순은 심수봉의 기타 반주로 혼성 듀오 라나에로스포의 "[[사랑해#s-4.1]][* 인터넷 밈으로 유명한 [[김성근]]의 [[한화의 김성근 감독님 사랑해|응원가]]의 원곡이다.]"를 부르고 있었고 박정희는 간간이 흥얼거리며 신재순의 가락에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anchor(사랑해)] 바로 이때 김재규가 권총을 하의 주머니에 넣고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신재순이 중간에 한 번 틀려서 다시 부르던 중[* 신재순은 틀린 부분 때문에 크게 긴장했지만 박정희는 젊은 여자들이 실수한 부분이 귀여워 보였는지 허허 웃고 넘겼다고 한다.] 김재규는 신재순이 1절 후렴을 막 시작하려는 차인 7시 40분에 바지 주머니에 숨겨둔 권총을 꺼내 노래를 끊으며 옆에 앉아 있던 차지철을 향해 "'''차지철 이 새끼! 너 건방져!'''"라고 외치며 첫 발을 쐈다. 김재규가 쏜 첫 발은 차지철의 오른쪽 손목[* 정중앙에서 약간 왼쪽을 맞았다. 주요 혈관을 관통하지 않는 바람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던 상태였다.]을 관통했고 갑자기 총에 맞아 크게 당황한 차지철은 관통당한 손목을 움켜쥐며 "김 부장, 왜 이래!"라고 외쳤다. 그리고 박정희가 "'''지금 뭐 하는 짓들이야!'''"라며 소리치자 김재규는 "'''야, 너도 죽어봐'''"라고 받아치며[[https://www.joongang.co.kr/article/18524364|#]] 마주보고 앉아있던 박정희의 오른쪽 가슴을 쐈다. 이 총격으로 박정희는 오른쪽 폐에 관통상을 입었고 곧바로 쓰러져 얼굴을 식탁에 묻었다. 이때 김재규는 차지철을 쏘고 바로 박정희도 쏘았다고 증언했으나, 같은 안가에 있었던 박선호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첫 발 사격 후 4~5초 이상의 간격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 김재규가 총을 쏘기 직전에 한 발언은 위에서 언급한 "너 건방져!"가 아니라는 설이 존재했다. 김계원에게 "[[각하(호칭)|각하]]를 똑바로 모시라"라고 충고한 후 박정희에게 "각하, 차지철 저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올바로 되겠습니까?"라면서 발사했다는 게 2000년대까지의 다수설이었다. 이 발언은 신재순의 진술에 의거한 것인데 이는 이 사건을 우발적이거나 개인적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둔갑시키려는 목적이었던 듯하다. 2011년 중앙일보의 [[http://news.joins.com/article/6487975|기사]]에서 신재순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측의 강압에 못 이겨 위증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심수봉은 꾸준히 당시의 소수설을 밀어서 드라마 [[제4공화국(드라마)|제4공화국]]에서 직접 자문을 맡을 때도 김재규의 대사를 [[https://youtu.be/NdsZO5Mz25s?t=33m12s|"이 새끼! 너 건방져!"]]로 정했다.] 이 증언 차이는 의자매까지 맺으며 친밀했던 신재순과 심수봉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 또 저격 전에 박정희가 김영삼을 구속기소해야 한다는 질책에 김재규는 "[[김영삼 총재 의원직 제명 파동|이미 제명당한]] 김영삼을 구속시키면 국민들은 그를 두 번 죽이는 거라고 인식할 겁니다. [[대국적으로 하십시오|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셔야지요.]]"라는 말을 했다는 설도 있으나 심수봉은 자신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1994&no=67000|회고록 '사랑밖에 난 몰라']]를 출간하면서 김재규는 '''대국적으로 하라는 말은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심수봉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나 "버러지 같은 놈" 같은 김재규가 했다고 알려진 발언들에 대해서 김재규가 그런 말을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총 쏘는 데 급했지 여유를 부리면서 말을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 김재규는 박정희에게 제3발을 쏘려고 했으나 권총이 격발 불량을 일으켜 발사되지 않자 밖으로 뛰어나갔고 차지철은 그 틈을 타 [[빤스런|연회장 안의 화장실로 도망갔다.]][* 그때 차지철이 입었던 손목 관통상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고, 대통령 경호원들도 있던 현장이었던 만큼 만약 차지철이 도망치지 않고 김재규를 저지했다면 사건은 실패로 끝나고 현대사는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뒤바뀌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 당시 간경변 환자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김재규는 태권도, 합기도, 검도 도합 13단의 차지철에게 쉽게 제압당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물론 총상을 입은 상태로 저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김계원은 연회장을 박차고 복도로 뛰쳐나와 취기와 공포심에 벽을 붙든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이때 김계원이 사건이 진전되는 것을 감시하는 공범자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과 단순히 김재규가 무서워서 도망갔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었든 박정희가 살해당할 당시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비서실장의 직분을 가진 사람으로서 비판을 받아 마땅한 행동이었다.] 한편 대기 중이었던 박흥주와 이기주, 유성옥 일행은 총성이 나자 주방으로 달려가 식사 중이던 김용태 경호실 운행계장과 김용섭 경호관을 사살했고[* 안가 요원들의 사격은 거구의 김용섭에게 집중되었고, 김용섭은 다섯 발 중 네 발을 가슴에 피격당하여 쓰러진 채 한동안 신음하다 사망했다.] 그 과정에서 안가 요리사 이정오는 허리에, 식당차 운전사 김용남은 어깨에 총을 맞는 부상을 입었다. 그 난리 중에 같이 주방에 있던 경호계장 박상범은 총 4발을 맞았는데 두 발은 옷만 뚫었고 한 발은 허리띠에 차고 있던 예비 실탄에 맞고 튕겨나갔고 나머지 한 발은 허리 관통상을 입혔다. 그런데 박상범은 총을 맞고 쓰러질 때 주방 조리대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 완전히 의식불명이 되어 죽은 것으로 오인되었고 총상도 뼈나 내장은 상하지 않은 채 살만 관통하여 자연 지혈되면서 출혈도 적었으며 나중에 안가 경비원인 김태원의 확인 사살 시 박상범 옆에 안가 직원 김용남이 총상을 입고 쪼그려 앉아 있어서 잘못 맞을까 봐 사격을 포기한 행운도 따르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박선호는 경호원 대기실에서 마른 안주를 먹으며 TV 방송을 보고 있던 경호처장 정인형과 경호부처장 안재송과 같이 있었는데, 총성을 듣고 정인형과 안재송이 뛰어나가려 하는 것을 박선호가 [[S&W M36|S&W M36 치프 스페셜]] [[리볼버]][* 남아있는 증거 사진을 보면 확실히 이 총이다. 이 S&W M36과 김재규의 발터 PP는 총기번호까지 기록이 남아있지만 현재는 행방이 알려져 있지 않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6/2009020601140.html|총기 행방에 관한 기사]] 게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육영수]]도 [[문세광]]에게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같은 모델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를 먼저 뽑아들어 "움직이지 마라, 제발 우리 같이 살자!"라고 애원하며 막아섰다. 그러나 안재송이 총을 뽑으려 하자 어쩔 수 없이 박선호는 안재송을 쐈고, 이어서 친구인 정인형도 쏘고 말았다.[* 이 일화는 '''총을 먼저 겨눈다'''는 것이 얼마나 [[총기제일주의|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안재송은 해병 장교 출신으로 권총 부문 사격 국가대표로 선발된 적도 있으며, 특히 속사가 주특기인 명사수였다. 가슴에 찬 권총을 뽑아 0.7초 내에 25m 앞의 [[박카스]] 병을 명중시켰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http://news.donga.com/3/all/20131026/58470365/1|출처]] 게다가 안재송은 해병 대위 시절에 미국 해병학교에 유학을 갔다왔는데 당시 어떤 미 해병대 장교도 안재송의 45구경 권총 속사 사격 기록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출처: 이근식(예비역 해병대령), 노해병의 어제와 오늘)] 박선호가 권총을 겨누자 안재송은 반격하기 위해서 일어서면서 권총을 뽑았지만 이미 총을 빼 겨누고 있었던 박선호의 선제 사격에 흉부 관통상을 입고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나중에 시체 검안 결과에 따르면 안재송은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상황에서 총탄을 맞았다고 한다.[* 출처: 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제1권] 대한민국 제일의 속사권총 명인도 상대방이 먼저 총을 겨눈 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안재송과 정인형이 순순히 움직이지 않았다면 둘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라 박선호는 자신의 총을 총이 불발된 김재규에게 넘겨주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게 박정희는 허파, 차지철은 팔만 다친 채로 암살이 실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전히 김재규 측이 박흥주 등 3명이 더 있는 등 수적으로 우세했지만.] 게다가 박선호 역시 해병대 장교로 20여년간 군복무를 한 군인이었으므로 더욱 그러하였다. 그런데 박선호가 안재송, 정인형을 사살하던 시점에서 느닷없이 안전가옥 나동 전체의 조명이 나갔는데 이는 지하 보일러실에서 신문을 읽고 있던 안가 영선[* 營繕, 건축물을 신축하거나 수선함.] 담당 강무홍이 총성을 전기 합선으로 착각하고[* 전기가 갑자기 합선되면 펑 하는 폭발음이 난다.] 차단기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밖에서 계속 이어지는 총소리와 고함 소리에 합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 강무홍은 다시 차단기를 올린 후 보일러실 문을 잠근 채 몸을 숨겼다고 한다. 만약 불이 조금 일찍 꺼졌더라면 박선호는 오히려 정인형과 안재송에게 역습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한편 김재규는 총상을 입은 차지철과 박정희를 확인사살하려고 했지만 권총이 기능 고장으로 인하여 끝내 발포가 되지 않자 다른 총으로 일을 끝내려고 연회장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정인형과 안재송을 처치하고 나온 박선호로부터 S&W M36 치프 스페셜 리볼버를 넘겨받아 연회장으로 돌아왔다. 그때 화장실에서 나와 경호원을 찾던 차지철은 김재규와 맞닥뜨렸고 차지철은 문 옆의 문갑을 치켜들고 거세게 저항했지만 김재규는 차지철의 복부에 총을 발사하여 치명상을 입혔다. 차지철을 완전히 거꾸러뜨린 후 김재규는 여성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있던[* 합수부에서 김재규는 "차지철을 거꾸러뜨리고 앞을 보니 대통령은 여자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있어 식탁을 왼쪽으로 돌아 대통령에게 다가가자 여자가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권총을 각하의 머리에서 50cm 거리에 대고 쏘았습니다."라고 진술했다.[[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5383&C_CC=AC&ppage=/board/subcon/list.asp&sC_CC=F1081|#]]] 박정희에게 다가가 우측 관자놀이를 향하여 마지막 탄환을 발사했다.[[http://www.chogabje.com/premium/book/view.asp?sCidx=29|#]] 당시 심수봉과 신재순은 쓰러진 박정희를 부축했고,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마지막 탄을 발사하러 들어오는 순간 박정희의 등 뒤에서 나오는 피를 막고 있었다고 진술했다.[[http://m.chogabje.com/client/news/viw.asp?idx=88777|#]]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55383&C_CC=AC&ppage=/board/subcon/list.asp&sC_CC=F1081|#]] 김재규가 들어오자 신재순은 화장실로, 심수봉은 부속실로 피했다. 이 마지막 탄은 박정희의 오른쪽 귀 바로 윗부분을 뚫고 들어가 지주막을 뚫고 뇌를 관통한 뒤 왼쪽 광대뼈에서 멈췄다.[* [[국군서울지구병원]] 원장 [[김병수(1935)|김병수]] [[대한민국 공군]] [[군의관|군의]] [[준장]]은 박정희의 머리에서 멈춘 이 총알을 수술로 제거해 고인을 깨끗이 모시자고 건의했으나 [[박근혜]]가 시신에 다시 칼질을 할 수 없다고 반대하여 결국 시신과 함께 국립묘지에 묻히게 되었다고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682951|출처]]] 이로써 결국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62번째 생일을 맞지 못하고 62번째 생일 19일 전에 향년 61세로 생을 마감했다.[* 참고로 만약 박정희 대통령이 살아 있었다면 박정희의 62번째 생일은 성대하게 진행됐을 것이다. [[1979년]]에도 연초에 언급했다. 70년대 마지막 생일이기에 생일잔치가 성대하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박정희의 최후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은 끝까지 옆에 있었던 신재순과 심수봉이었는데, 신재순은 [[조갑제]]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그 사람의 눈과 마주쳤을 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의 눈이 아니라 미친 짐승의 눈이었어요. 그가 대통령의 머리에 총을 갖다 대었을때는 다음에는 나를 쏘겠구나 생각하고 후다닥 일어나 실내 화장실로 뛰었습니다. 저의 등 뒤로 총성이 들렸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도 문손잡이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대통령께서는 좀 취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말이 헛 나올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인자한 아버지 같았어요. 피를 쏟으면서도 '난 괜찮아'라는 말을 또박 또박 했으니까요. 그 말은 '난 괜찮으니 자네들은 어서 피하게'라는 뜻이었습니다. 대통령이시니까 역시 절박한 순간에도 우리를 더 생각해 주시는구나 라고 생각했었죠. 그분의 마지막은 체념한 모습이었는데 허무적이라기보다는 해탈한 모습 같았다고 할까요. 총을 맞기 전에는 '뭣들 하는 거야' 하고 화를 내셨지만 총을 맞고서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겠다는 자세였어요. 어차피 일은 벌어졌으니까요. 그리고 심수봉은 그 순간을 이렇게 진술했다. >가슴에 총을 맞은 각하를 보니 호흡이 이상하여 ‘각하 괜찮으십니까’하고 묻자 ‘응, 괜찮아’하셨지만 등에서는 피가 많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상체를 부축하고 있었고, 신재순 양은 손으로 피를 막고 있었다. 내가 무릎 가까이 각하를 부축하고 있을 때 김재규 부장이 각하 뒤로 와서 총을 더 쏘고 나갔다. 공포에 질린 두 사람은 무서워서 마루로 나와 관리인 사무실로 들어가 숨어 있었다. 그 동안 밖에서는 총소리가 5-6발 정도 더 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